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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D 2016. 2. 21. 23:23Talon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아흔 한번째 주제, 하고 싶은 말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탈론으로 참가하였습니다.
※ 저번 전력(http://dreamtea.tistory.com/25) 과 이어집니다.
가지 마세요….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저, 전… 당신의 소환사….
하. 본래 암살자랑은 거리가 멀던 반푼이 소환사가 말이지.
…….
가겠다. 내겐 할 일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뒷모습.
당신이 떠나는 꿈을 꾸었다.
눈을 떴더니 침대 위에 있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안도의 한숨조차 쉬지 못했다. 울고 싶었다. 꿈 속의 그가 한 말엔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언제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그토록 명확한데도. 어느 날 훌쩍 그가 가버린다 해도 그녀는 그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그 꿈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가 떠나는 것보다는 떠나는 그를 향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한심함이었다.
그 날, 그와 리그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날 이후로 그녀는 그를 피하고 있었다. 이유를 대자면 여럿 있었다. 그를 보기가 껄끄러워서. 죄책감이 들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그리고…. 그가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을까봐. 결국 모두 변명이었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그녀 본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사실은 말이에요.
리그는 오늘도 평온했다. 두어 경기를 뛴 후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돌린 경기에서 남은 자리는 흔치 않게도 중단 라인이었다. 잠시 멈짓하다가 그녀는 챔피언의 이름을 불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야, 소환사!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보랏빛 마법사를 보며 그녀도 웃음을 지었다.
오늘 울적해보였어. 눈 감으면 훨씬 더 잘 보인다구.
네?
소환사, 유쾌하게!
네, 네에?
그녀와 룰루는 나름대로 활기 넘치게 경기를 누볐다. 그리고 넥서스를 깨트리기 일보 직전, 수정구슬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 순간에 룰루는, 어쩌면 언제나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던졌다. 당연하지만 리그 바깥에 있는 소환사는 경기 내용이나 챔피언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대신에 엉겁결에 그녀는 아무렇게나 보이는 적 챔피언에게 스킬을 걸었다. 상대가 까만 고양이로 변하는 것을 보며 문득, 정말 문득. 그녀는 왜 갑자기 이 귀여운 요들 아가씨를 소환하고 싶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구! 우후후, 에헤헤! 경기는 룰루의 웃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소환사, 다음에 볼 때 컵케이크 사줘야 돼? 물론이에요. 보라색 컵케이크로 가져갈게요! 와아아! 정신 감응 상태에서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다음 번 바깥에서 그녀를 볼 때 룰루는 늘 그랬듯 그녀에게 달려와 안길 것이다. 정말 사랑스러운 챔피언님.
그녀는 수정구슬을 손에서 떼는 대신에 다시 소중히 품에 안았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그녀의 계획도 바뀌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모든 다른 잡념 대신에 한 가지 말만이 남았다. 그렇게 또 다른 경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그녀가 첫 번째 소환사였다. 시덥잖은 금지 챔피언 목록 순서가 지나고, 하아.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한 번.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퍽 오래 된 것만 같은 이름을 불렀다. 탈론 님. 그날 이후로는 첫 소환이었으니 꽤 오랜만인 것은 맞았다.
오랜만이에요.
…정말 오랜만이군, 소환사.
저, 염치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말해 봐.
…그, 그…. 바쁘세요…? 별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요. …보고 싶어요.
……늘 보던 곳에서 보지. 오늘 밤?
아, 네! 그 때 봬요! 겨, 경기 파이팅이에요!
정말로,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그녀는 제가 로브를 쓰고 있음에 감사했다. 이 부끄러운 감정이 부디 그에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그녀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쿵쾅쿵쾅 뛰던 가슴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또 다른 감정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졌다. 그는 웃고 있었던 것 같다.
-
탈론님! 보고 싶어요!
탈론 드림인데 늘 다른 챔피언이 등장하네요. 사실 소환사 역하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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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015. 8. 30. 23:39오리하라 이자야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스물 다섯번째 주제, 날 사랑하나요?
※ 듀라라라!! 의 오리하라 이자야로 참가하였습니다.
※ 듀라라라x2!! 승, 전(5-7권)의 스포일러가 소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넌 인간을 사랑한다고 확신해?
가능한 한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처럼 보이기를 바랬다. 같이 밥을 먹게 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병문안의 답례라니 뭐라니 했던 것 같지만 사무실로 직접 오라는 말에 그녀는 또 무슨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웬일로 나미에 씨도 없는 사무실 안은 조용하고 조금 휑한 느낌까지 들었다. 정갈하게 끓여진 스키야키 냄비를 앞에 두고 잠깐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별 이야기가 오간 건 아니었다. 신라의 이야기, 그녀의 직장 이야기, 그의 고객 이야기가 아주 조금, 우스갯소리처럼 꺼내져 나온 시즈오의 이야기.
요새 인기만점이던데? 구제불능이라니까, 그 어린 여자애를 말야.
응, 그 어린애한테 이자야 오빠라는 분은 스턴건을 선물로 줬다지.
아하하, 농담이겠지. 그 앤 날 모르는 걸?
시시한 말싸움을 잇고 싶지는 않아서 그녀는 작게 혀를 차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달그락 달그락 식기 소리만이 들렸다. 침묵이 어색한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부터 그녀는 말이 적은 편이었다. 학창시절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사람은 신라였다.
그러고 보니 신라, 얼마 전에 여행 갔다 왔다던가.
아아, 응. 여행 때문에 사람이 칼에 찔렸다는데도 매섭게 끊어버리더라고.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보다야 세르티가 훨씬 중요하겠지.
정말이지, 그 녀석도 별종이라니까.
그런 괴물을. 중얼거리듯 작게 입 속으로 사라진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귓가에는 선명히 남았다. 알고는 있다. 오리하라 이자야의 인간 사랑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혐오로도 이어졌다. 그 사랑도 혐오도 남들의 눈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리고…. 묵혀왔던 질문을 꺼내고 그녀는 유독 더 젓가락을 달그락거리며 밥그릇을 비웠다. 아까보다 소리가 작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반대쪽 식탁의 오리하라 이자야는 젓가락을 손에서 놓은 채였다.
내 사랑은 진실하다구.
사건과 절망과 혼돈을 쥐어주는 게?
설마, 그렇게 보였어?
모르는 척 웃으며 말하는 것이 얄망스러웠다. 결국 그녀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식의 행동을 사랑이라 부르던가?
사랑에 형식이나 방식을 논하기엔…, 글쎄, 신라만 봐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웃음쳤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는 다음에 이어질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너도 알잖아? 세르티에 대한 신라의 사랑은 분명 절대적이지만 그녀, 세르티가 찾고 있는 머리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라면.
일면 절대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이라도 그 뒤엔 질척질척한 이기심이 붙어있기도 하고.
…….
내 사랑은 충분히 정당해.
그 말을 거짓이라 판단할 근거는 없다. 애초에, 애초에 사랑이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말문이 막힌 그녀에게 그는 활짝 웃어보였다.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그 질문 이후로 그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 가면과도 비슷한 웃음은 그 뒤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때, 그리고… 그걸 숨길 필요가 없을 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맞춰볼까? 즉 너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내 감정이 사랑일 리 없어.
알고 지낸 지가 근 십년이었다. 같이 있어서 득 볼 것 하나 없는 남자기도 하였다. 왜 이런 놈을 십 년이나 지인으로 두게 되었는지 그녀는 문득 신라가 원망스러워졌다.
사랑에 정의를 내릴 수 있어? 에로스도 플라토닉도 같은 사랑이고, 이기심도 이타심도 같은 사랑이야. 상대를 누구보다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도 사랑이고 너무너무 좋아해서 상처입히고 싶다는 마음도 사랑이야. 사랑하니까 자유롭게 해 주고도 싶고 사랑하니까 내 옆에만 묶어놓고 싶기도 하지.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은 존재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를 향해 품는 모든 감정은 사랑이나 마찬가지라구.
궤변이야.
아아, 궤변이지.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감정에 네가 사랑이라 이름붙인다면 그건 사랑인거야.
그는 입꼬리 한 쪽에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 아랫쪽부터 딱딱하게 굳어오기 시작했다. 으슬으슬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다시 물어볼게. 날 사랑해?
고요한 방 어딘가에서 초침 소리만 딸깍딸깍 몇 초간을 반복했다. 아아, 정말…,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도 싶지만.
…내가 뭐라고 말할 거라 생각해?
음….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
응, 잘 알고 있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너 따윌.
그는 아직도 가끔 이렇게 그녀를 놀리곤 했다. 오리하라 이자야란 대충 이러한 남자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있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오리하라 이자야를 사랑할 리 없다는 것은 그녀도, 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하하하, 다행이네. 진짜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했거든.
절대 할 필요 없는 고민이니까 밥이나 먹어, 좀.
그는 대답 대신 싱긋 웃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식은 스키야키 냄비를 사이에 두고 건조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
이자야 따위랑 연애같은 거 할 리가 없잖아? ( ಠ 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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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015. 7. 19. 23:22오리하라 이자야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서른번째 주제, 빈 자리
※ 듀라라라!! 의 오리하라 이자야로 참가하였습니다.
※ 원작 (13권) 엔딩 스포가 다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이케부쿠로를 덮은 검은 하늘 사건의 정체는?
게시판을 읽어 내리다가 그녀는 자신이 쓴 기사를 발견했다. 불가사의하고도 비현실적이었던 이케부쿠로의 대폭동 사건도 벌써 몇 개월 전 이야기.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게시글을 클릭했다. 잘 포장된 아주 약간의 진실과 억측과 의문이 섞인 불확실한 내용이 흩뜨려진, 기사로써는 빵 점짜리 쓰레기 글이었다. 그러나 그 누가 그날의 진실을 진실이라 믿어줄 것일까.
시간은 의식보다 빨리 흐른다. 어떻게든 변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상은 그닥 변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사건 역시 이미 과거의 기묘한 일이 되었을 뿐 이케부쿠로는 여전히 이따금 이상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제멋대로인 거리로써 굴러가고 있다. 그 자체로 흐름일 지도 몰랐다. 시간, 공간, 사람. 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인가, 혹은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여전히 이 곳에서 일을 하며 이따금씩 기삿거리를 위해 거리를 나돌고 이따금씩 지인들을 마주치며 나름대로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일상, 그래, 일상. 이케부쿠로는 일상을 걷고 있다. 비록 그 안에 늘 존재했던 누군가가 없을지라도.
그가 없는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친구들과, 지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 어리던 라이라 고등학교의 작은 후배들, 그 소용돌이의 주인공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녀는 카도타와 함께 그들에게 밥을 사주고 신라의 집에서 뒷풀이를 했다. 전골 먹었을 때 기억나네요. 누군가 말을 꺼냈다. 전골? 아, 마사오미 없었을 때 다같이 여기서 전골 먹은 적 있거든. 그 날 그들은 여러가지 추억담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신라가 말한 대로 어느샌가 그 일조차 추억담이 되었다. 웃으며 그 날의 이야기를 돌이키다가 그녀는 문득,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사실은 처음부터 마음 저 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불편한 무언가가 있었다. 잔 비어가네요. 한 잔 더 드릴까용? 아, 고마워. 입술을 축였지만 여전히 목이 탔다. 알고 있다. 입이 쓴 건 술 때문은 아닐 거라고.
그의 공백이 이케부쿠로에 끼친 영향은 그저 의문스러운 일이 조금 덜었다는 것 뿐이었다. 사고가 일어나도 그것은 단순한 단발성으로 뒤가 찝찝하지 않았다. 시즈오가 날뛰는 일이 조금 줄어들었고 선량한 시민이 휘말리는 일도 조금 줄어들었다.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세르티의 일 또한 줄어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들이 그 점에 대해 한 톨이라도 신경을 쓸 리 없었다. 한번 농담처럼 그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죽었나? 『그래도 죽진 않았으면 하는데』그녀는 말없이 끄덕이며 넘어갔다. 신라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지만 더 이상 이야길 꺼내지 않았다.
별로 내가 감사할 일은 아니지. 그 당시에는 그가 누군지도 몰랐다. 아가씨도 같이 갈 텐가?
…아니요. 곧 내릴게요. 깨는 것만 보고.
하등 같이 갈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때 왜 그를 구하기 위해 뛰었는지도, 그저 머리보다 다리가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왜 자신은 그 순간 아주 잠시 망설였을까. …도리짓을 했다. 의미 없는 고민이다.
나는 네 빈자리를 느끼고 있는 걸까?
그가 없어져서 쓸쓸하다 생각한 적 없었다. 그가 죽었을까 걱정이 된 적도 없었다. 그가 죽는다는 것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죽었다 한들 그녀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었을까. 살아있다 하더라도 별 상관이 없을 일이다.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그러니 그녀는 딱히 그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이케부쿠로는 평온하며, 여전히 목 없는 라이더는 도로를 달린다. 시즈오는 자판기를 집어던지고 라이라 고등학교에는 매년 신입생이 생겨난다. 그녀가 나고 자란 거리는 그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여전히 평범하다.
전화가 온 것은 인터넷 창을 띄우고 타이핑을 하던 정말 평범하던 어느 날의 평범한 근무 중의 일이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떄 그녀는 액정도 확인하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야. 나야. 잘 지냈어?"
"아, 응."
"저기, 조금 건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조금은 놀랄 줄 알았는데 말야. 재미없네."
"뭘 새삼스럽게. 전화 정도로 무슨, 생색을…."
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하던 말이 저 편으로 날아갔다. 시선을 모니터 오른쪽 끝으로 돌리는 그 짧은 시간조차 중간중간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날짜를 살피었다. 근 이 년 만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이 년만의 안부 전화. 아, 그렇구나. 그녀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가 없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빈 자리를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인지가 한번도 빈 적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이렇게나 당연하다는 듯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뭐, 이렇게 지내고 있어. 요새 유난히 심심해서, 여긴 조용하고."
"응, 어딜 가서도 잘 살 테니까, 넌."
"너무하네. 나도 처음엔 힘들었다고. 아, 맞아. 다른 녀석들한텐 이야기하지 말아줘. 특히 여동생들한텐."
"뭘? 네 생사 여부? 있는 곳?"
"전부. 그럼 다음에 봐. 바이바이."
끊긴 핸드폰 액정에 적힌 한자가 유독 반짝이는 듯 했다. 오리하라 이자야, 수신 통화, 10분 35초.
…이자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세르티한테 고맙다고 꼭 하고.
…하하, 말이… 심한걸…. 괴물에게, 감사… 라니….
이 녀석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아.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
일단 오늘 드림온 다녀왔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결말 스포일러 그 자체입니다. 주의해주세요.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기 어려울까 싶어 글자를 바꿔 보았습니다만 이해하기 어려운 데엔 별 차이 없어 보이는군요(..)
제 이자야 드림 치곤 평소보다 조금 더 달달한 것 같습니다. 어디 달달함이 있냐 하시면 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해주시는 분들도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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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015. 6. 28. 23:33Talon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스물 세번째 주제, 솔직함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탈론으로 참가하였습니다.
1.
그 날은 화요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리그에 출근한 그녀의 눈에 이번주의 무료 소환권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유난히도 눈에 띄던 챔피언이 있었다. 근접 암살자 챔피언이라 하였을 때 절대로 뺄 수 없는 그 명성 드높은 챔피언이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암살자인데 탈론 님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차피 연습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소환권을 구입하겠다 맘 먹은 챔피언이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소환권을 구입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는 첫 소환을 공식 랭크 경기로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경기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어찌어찌 경기는 이겼다마는 그녀는 경기 내내 제 팀원들과 그리고 자신이 컨트롤하는 챔피언에게 손발이 닳도록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2.
그림자의 주인인가.
하, 난잡한 수식어 하고는, 탈론.
무슨 용무지. 이 밤에 남의 구역에 먼저 친히 발걸음을 했다는 건.
딱히 싸우고 싶다는 게 아니다. 오늘 있었던 리그, 내 소환사가 누구였는 줄 알아?
…….
짐작이 갔다는 표정이로군. 그래, 리그 내에서도 유명한 네 아가씨였다. 날 소환한 것도 처음이었지. 정말 지독히도 못 하지 않았나? 움직이는 나조차도 답답하더군.
……그녀에 관하여 너와 할 말은 없다. 그 따위 헛소리를 하러 온 거면 냉큼 꺼져.
둘 다 서로에 관해서는 이렇게도 버둥거리는 꼴이라니. 그 소환사도 그랬다, 네 녀석을 확인한 순간 당황하는 심정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더군. 그 때 미니언을 세 마리쯤 놓쳤지, 아마.
그래서,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뭐, 간단해. 그 소환사와 너는 어떤 관계지?
아무런 관계 없다. 소환사와 챔피언,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니다.
단호하군. 알았다. 그 소환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네 녀석과는 상관 없다는 말이겠지?
…더 말해 입만 아프겠군. 썩 꺼져.
크큭, 너무 그러지 말라고. 보는 건 재미있지만 말야.
웃으며 그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또 하나의 그림자도 큭큭 웃으며 희뿌옇게 옅어졌다. 폭풍 같은 어둠이 가고 거짓말같은 달빛이 그를 비춘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든 그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비웃듯이 파고드는 잡념들이란. 제드는 그녀가 그를 보고 당황했다고 하였다. 모든 대화 중 가장 위화감이 든 말이 그것이었다. 그에게까지 전해졌다고? 그녀는 그가 아는 모든 소환사 중 정신 교류를 가장 잘 컨트롤하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때조차, 심지어 게임이 후반부에 접어들어 넥서스에 의한 정신 동화가 가장 강력해 질 때조차 그녀의 감정이 그 쪽으로 역류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연속적으로 킬을 따내었을 때조차도 기쁜 감정 한번 전해진 적이 없다. 실수로 그가 죽었을 때나, 리그가 거의 져 가는 시점에서도 그녀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조차 흘려보낸 적이 없다. 소환사의 마음에 동화되지 않으니 그로써는 시종일관 차분함을 지킬 수 있었고 그 차분함은 암살자의 기본 조건이다. 그녀가 그를 소환했을 때 그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그게 큰 작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겨우 자신을 본 것 정도로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챔피언에게 내비쳤다고. 그 밤, 잡념은 달빛을 타고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3.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마, 소환사.
앗. 계셨어요, 제드 님?
흐음, 알고 있었으면서.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닫으려던 창문을 다시 활짝 열어재꼈다. 그림자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온 또 하나의 그림자는 창문을 훌쩍 넘어 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미천한 소환사의 방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글쎄, 딱히 없는데.
에, 시비는 나가서 쉔 님한테 걸어주시는 편이.
…네 녀석을 죽이고 나가도 충분하지.
노, 농담이에요.
떨떠름하게, 그녀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손님을 맞을 생각도 이유도 없는 늦은 밤이었던지라 방 꼴이 말이 아니기는 했다. 애초에 이 밤에 여자 혼자 사는 방에 찾아올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이상한 분.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를 가리켰다.
앉으실래요?
필요 없다.
아, 네.
그의 등 뒤에서 희미한 벽등에 비친 그림자가 일렁이듯 피어올랐다. 또 하나의 그, 그림자. 오늘 경기에서 그녀가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림자를 활용하여 싸우는 여러 가지 컨트롤은 끔찍하리만큼 어려웠다. 그가 몇 번이고 방법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것은 게임이 길어지는 데에 꽤나 큰 작용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녀가 상대였던 탈론을 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적어도 라인전 단계까지는 큰 실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소환사가 될 거라면 그림자를 쓰는 방법정도는 알아둬.
아, 네에. 혼자서도 연습 많이 해 볼 테니 자주자주 얼굴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아.
쯧, 건성건성대는 꼴 하곤.
그래서 정확히 왜 오신 건데요.
그 질문에 그가 아닌 그림자가 먼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가는 흐물흐물 사라졌다. 갑옷에 가려진 사이로 그녀는 그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놀리듯 킬킬대는 웃음을.
소환사, 대체 그 놈이랑은 무슨 관계지?
누구요? 쉔 님은 제게 따스하고 온화하신 은사이시자 제 상단 라인에서의 구원자이신데요.
…진짜로 죽고 싶은 모양이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탈론.
아무 사이 아니에요.
그렇게나 단박에. 아까 전의 참혹한 경기 도중에도, 또 방금 전까지도 여유롭게 농담이나 치던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은 사라져 있었다. 제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흐음.
4.
그는 평소같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까칠했으며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나무랐다. 그와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절대, 아무 사이도. 단순히 소환사와 챔피언의 관계, 비지니스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솔직해져, 소환사. 네 욕망에 충실해 봐.
그 날, 제드가 그녀의 방을 떠나면서 속삭였던 것은 그녀를 꿰뚫어보기라도 했단 양 달콤한 말이였다. 제드 님,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5.
"…탈론 님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처음으로 리그에 왔을 때에, 그 의식, 기억하시나요? 저희는 그걸 리그의 심판이라고 불러요. 그 때의 소환사가 저였어요."
"하?"
그는 드물게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원래 저보단 좀 더 고위급 소환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땐 남는 인력이 없었다나. 이것 또한 모르셨겠지만 저도 나름의 이름 있는 소환사라, 어쩌다 보니 대체위원으로써 그 때 당신의 리그의 심판을 진행하게 되었었습니다. 그 쪽 전담의 소환사님들 몇몇 분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목에 닿던 칼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리그의 심판이란 시련이다. 챔피언들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억을 파고들어 그들을 시험하고 파악하는 리그의 최후 관문이었다. 설명은 충분히 들었고 정석에 가깝게 치뤄진 심판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빈민굴의 뒷골목에서 굶주리며 구르고 살아온 어린 아이는 결국 제 손으로 피에 얼룩진 길을 걷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모든 챔피언에겐 각각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리그의 챔피언이라는 뒷면에 새겨진 얼룩진 과거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그 중에서도 그녀가 직접 하나하나 헤집은 기억은 무엇보다 컸다. 미안함과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인 그에 대한 생각은 이내 그의 소환권을 구입한다는 형태로 나타났고, 그 후로 꾸준히 그를 소환하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너였나."
"네."
그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당연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 불쾌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떠셨나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필요한 의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좋았다곤 말 못하겠군."
그 때보단 유연한 대답.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문이었나, 리그에서의 정신 교류는."
"네?"
"네 쪽에서 내게 오는 정보를 극도로 절제해온 것 말이다."
"그, 그건 습관…."
"하아, 네 녀석이 얼마나 멍청한지는 온 리그의 챔피언이 다 알던데."
"읏, 누구에요, 그거! 제드 님이에요? 윽, 그놈의 그림자 좀 못 쓴다고 진짜!…."
"……."
"아, 그러니까요…. 멍청한 게 아니라…."
"소환사."
"네?"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보였다. 과거, 현재, 그리고 목표까지도."
"……."
"나를 대하는 네 태도가 다른 챔피언들과 달랐던 것이 네가 맡은 심판에 대한 속죄나 동정이었다면 앞으로 내 소환은 집어 치워라."
"자,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똑바로 해."
목소리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웠으면서도 담담했다. 애초에 그는 흥분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탈론 님, 화… 나셨어요?"
"별로, 다만 기분 나쁠 뿐이지."
"…죄송해요. 하지만 적어도 속죄 따위는 아니었어요. 일단 제가 심판을 맡았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고. 또. ……. 아니에요. 그냥 그래서였어요, 탈론 님도 괜찮아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딱히 이해가 가진 않는군. 여튼, 그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줄타기, 그와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지금 이토록 리그 밖에서조차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지만, 그 내용은 늘 이렇듯 반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목 끝까지 차오른,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삼켰다. 보답받을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절대로 말할 수도 들킬 수도 없다. 절대로, 당신을 좋아한다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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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전 썰인데 이렇게 결국 우려먹고야 마네요. 내용이 조금 난잡해서 이해가 잘 가실까 걱정됩니다(mm..
리그와 소환에 대해서는 자체설정입니다(..) 날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같이 보시면 좋을 링크 -> (http://cactusagency.tistory.com/230) (탈론, 리그의 심판)
롤. 관련 범위까지 인생본진중 하나입니다;ㅅ;..
불친절한 장르의 불친절한 글로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전력 참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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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글
D 2015. 5. 3. 23:24Trafalgar Law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다섯번째 주제, 악몽
※ 원피스의 트라팔가 로우로 참가하였습니다.
※ 약스포주의
그들의 선장은 모두에게 무한한 선망과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가 단호히 자신은 개별행동을 하겠다 이야기했을 때도 그를 믿었다. 근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했으며 그 다음 목표를 위해 곧 합류하게 될 것이다 했다마는 정확히는 기약이 없는 이별이었다. 그의 의지가 확고하였기에 그녀는 도움이 될 수 없다는 비참함을 가슴에 안고서도 그들 해적단이 선장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지막 부분까지를 다듬었다. 왜 그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있어야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마저 신뢰로 덮기로 하였다.
측량실의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무거웠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항해사는 소심하긴 하여도 조용하진 않은 생물이었다. 지도 제작이 막바지에 들어설수록 그것은 더 심해져 그가 마지막으로 펜을 놓고 발 도장을 찍었을 때 단 둘이 있던 측량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고생했어, 베포."
"…캡틴에게 도움이 되겠지?"
"응, 당연하지. 쉬어. 가져다 주는 건 내가 할게."
"응. 덥다…."
조용히 갑판으로 나가는 그와 지도를 두어 번 번갈아 보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선장은 원체 속내를 잘 들어내지 않는 사람이긴 하였다. 문득 가슴 한 구석에 타오른 불안함이 매섭게 머리를 헤집었다. 우리는 선장을 그 누구보다 신뢰하지만, 선장에게 우리는 어떤 존재였나? 처음 선장에게 모든 것을 걸겠다 다짐했을 때 자신이 신뢰에 대가를 바라는 욕심을 부리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캡틴, 캡틴."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벌컥 열고 들어간 것은 일종의 오기였을 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펜이 들려 있었지만 미동은 없는 채. 그리고 고요한 숨소리. 요 며칠 무리하더니. 그녀는 조심히 문고리를 닫고 지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모자 그림자에 가려 그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깨워야 하나, 약간의 고민을 했다. 그 잠깐의 시간에.
"…코라, 씨."
"……?"
"…윽, 큭…… 코라…."
잠시간은 헛소리를 들은 줄만 알았다. 이 낯선 단어는 누구의 목소리인가. 그것은 선장에게서는 처음으로 들어 본 약한 목소리였다. 약간의 신음과 어떤 소리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울음과도 비슷한 소리가 섞여 목을 넘어 저 안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작은 비명과도 같은 잠꼬대. 계속해서 외치는 누군가의 이름.
"캡틴!"
본능적으로 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본능이 먼저 손을 움직였다. 그의 모자가 떨어지고 그가 일어나기 전까지 그의 얼굴의 감히 그녀가 건드릴 수조차 없을 정도의 무언가는, 아마도 그것은 절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었다. 털어내듯 양 어깨를 흔들자마자 곧바로 그는 눈을 떴다.
"……뭐야."
조금은 잠겨 있는, 낮고 냉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까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꿰뚫릴 듯한 시선이 그녀에게 와 박혔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겨우 이까짓 일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그녀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떨어진 모자도 주워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말없이 모자를 썼다. 자신의 행동을 무어라 말해야 하는가,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그녀가 선 채로 굳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좌우로 몇 번 고개를 꺾다가 책상 위에 놓인 새 지도를 들어올렸다.
"완성된 지도인가."
"…네."
"수고했어. 베포한테는… 아니다, 내가 직접 말하지."
"……."
또 다시 찾아온 침묵 사이로 문득 누구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말 해 주지 않은 것은.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는 법일진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 냉철한, 침착함을 잃지 않는 그들의 선장이라 하여 다를 리 없다. 그 또한 그녀와 같은 사람인 것을.
"…캡틴, 악몽이었어요?"
"……아아."
"…그런 데서 자니까 그렇지. 침대에서 편하게 자요. 얼마 안 남았는데, 피곤하면 안 되잖아요."
"알았다. 그럼 조금 쉴 테니까, 너도 가서 쉬어."
"네."
어설픈 미소가 섞인 표정으로 그녀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은 채로 결국 멈춰 서고 말았다.
"코라 씨, 라는 말을 들었어요."
"……."
"…목표와 관련된 건가요?"
"…날카롭기는."
"캡틴."
그녀는 돌아서 다시 한 번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 못한 말들이 섞여 어지러운 머리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뒤섞인 감정 속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말들을 골라내었다. 눈빛은 여전히 흔들리고 손 끝에 머뭇거림이 묻어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
"혼자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일인 거죠."
"……."
"캡틴을 믿어요.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그래,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아. 아직 갈 길은 멀다. 그걸 위해서야."
"……."
"믿고 기다리기나 해."
"캡틴…."
그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작은 웃음이 무엇보다도 안심이 되었다. 까닭 모를 눈물에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성급히 등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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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는 좋아하지 않지만 꼭 쓰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로우가 전부 제대로 설명해줬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2년 후 하트해적단 등장 좀 시켜주세요. 행방불명 된 써니호도..
새 드림전력으로는 처음 써 보네요. 봐주시는 분들도, 참여해주시는 분들도 늘 감사합니다: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