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D 2015. 8. 30. 23:39오리하라 이자야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스물 다섯번째 주제, 날 사랑하나요?
※ 듀라라라!! 의 오리하라 이자야로 참가하였습니다.
※ 듀라라라x2!! 승, 전(5-7권)의 스포일러가 소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넌 인간을 사랑한다고 확신해?
가능한 한 별 생각없이 던진 질문처럼 보이기를 바랬다. 같이 밥을 먹게 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병문안의 답례라니 뭐라니 했던 것 같지만 사무실로 직접 오라는 말에 그녀는 또 무슨 일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웬일로 나미에 씨도 없는 사무실 안은 조용하고 조금 휑한 느낌까지 들었다. 정갈하게 끓여진 스키야키 냄비를 앞에 두고 잠깐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외로 별 이야기가 오간 건 아니었다. 신라의 이야기, 그녀의 직장 이야기, 그의 고객 이야기가 아주 조금, 우스갯소리처럼 꺼내져 나온 시즈오의 이야기.
요새 인기만점이던데? 구제불능이라니까, 그 어린 여자애를 말야.
응, 그 어린애한테 이자야 오빠라는 분은 스턴건을 선물로 줬다지.
아하하, 농담이겠지. 그 앤 날 모르는 걸?
시시한 말싸움을 잇고 싶지는 않아서 그녀는 작게 혀를 차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달그락 달그락 식기 소리만이 들렸다. 침묵이 어색한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부터 그녀는 말이 적은 편이었다. 학창시절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사람은 신라였다.
그러고 보니 신라, 얼마 전에 여행 갔다 왔다던가.
아아, 응. 여행 때문에 사람이 칼에 찔렸다는데도 매섭게 끊어버리더라고.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보다야 세르티가 훨씬 중요하겠지.
정말이지, 그 녀석도 별종이라니까.
그런 괴물을. 중얼거리듯 작게 입 속으로 사라진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귓가에는 선명히 남았다. 알고는 있다. 오리하라 이자야의 인간 사랑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혐오로도 이어졌다. 그 사랑도 혐오도 남들의 눈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리고…. 묵혀왔던 질문을 꺼내고 그녀는 유독 더 젓가락을 달그락거리며 밥그릇을 비웠다. 아까보다 소리가 작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반대쪽 식탁의 오리하라 이자야는 젓가락을 손에서 놓은 채였다.
내 사랑은 진실하다구.
사건과 절망과 혼돈을 쥐어주는 게?
설마, 그렇게 보였어?
모르는 척 웃으며 말하는 것이 얄망스러웠다. 결국 그녀도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식의 행동을 사랑이라 부르던가?
사랑에 형식이나 방식을 논하기엔…, 글쎄, 신라만 봐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웃음쳤다.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녀는 다음에 이어질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너도 알잖아? 세르티에 대한 신라의 사랑은 분명 절대적이지만 그녀, 세르티가 찾고 있는 머리의 행방에 대한 이야기라면.
일면 절대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이라도 그 뒤엔 질척질척한 이기심이 붙어있기도 하고.
…….
내 사랑은 충분히 정당해.
그 말을 거짓이라 판단할 근거는 없다. 애초에, 애초에 사랑이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이길래. 말문이 막힌 그녀에게 그는 활짝 웃어보였다.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그 질문 이후로 그는 계속 웃고만 있었다. 그 가면과도 비슷한 웃음은 그 뒤에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때, 그리고… 그걸 숨길 필요가 없을 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맞춰볼까? 즉 너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내 감정이 사랑일 리 없어.
알고 지낸 지가 근 십년이었다. 같이 있어서 득 볼 것 하나 없는 남자기도 하였다. 왜 이런 놈을 십 년이나 지인으로 두게 되었는지 그녀는 문득 신라가 원망스러워졌다.
사랑에 정의를 내릴 수 있어? 에로스도 플라토닉도 같은 사랑이고, 이기심도 이타심도 같은 사랑이야. 상대를 누구보다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도 사랑이고 너무너무 좋아해서 상처입히고 싶다는 마음도 사랑이야. 사랑하니까 자유롭게 해 주고도 싶고 사랑하니까 내 옆에만 묶어놓고 싶기도 하지.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은 존재해.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를 향해 품는 모든 감정은 사랑이나 마찬가지라구.
궤변이야.
아아, 궤변이지.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감정에 네가 사랑이라 이름붙인다면 그건 사랑인거야.
그는 입꼬리 한 쪽에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 아랫쪽부터 딱딱하게 굳어오기 시작했다. 으슬으슬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내렸다.
다시 물어볼게. 날 사랑해?
고요한 방 어딘가에서 초침 소리만 딸깍딸깍 몇 초간을 반복했다. 아아, 정말…,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도 싶지만.
…내가 뭐라고 말할 거라 생각해?
음…. 무슨 헛소리냐고 하겠지?
응, 잘 알고 있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너 따윌.
그는 아직도 가끔 이렇게 그녀를 놀리곤 했다. 오리하라 이자야란 대충 이러한 남자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있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오리하라 이자야를 사랑할 리 없다는 것은 그녀도, 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하하하, 다행이네. 진짜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했거든.
절대 할 필요 없는 고민이니까 밥이나 먹어, 좀.
그는 대답 대신 싱긋 웃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식은 스키야키 냄비를 사이에 두고 건조한 대화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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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야 따위랑 연애같은 거 할 리가 없잖아? ( ಠ 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