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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루마 요이치

T.. 2014. 12. 28. 23:28

 

 

 

 

 

<드림 전력 60분> 너의 빨강구두

 

 

서른여덟번째 주제, 마지막 날

 

 

 

※ 아이실드 21의 히루마 요이치로 참가하였습니다.

 

 

 

 

 

 

 

 

 

처음 만난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확실했던 건 그 날도 회색 하늘이었다. 덥지도, 그렇다고 쌀쌀하지도, 습하지도 않았던 5월과는 영 빗나간 흐릿한 하늘. 어둡지는 않았지만 매우 단조롭고도 건조하던 회색. 그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네가 그 문제의 신입생이라며? 

 

그렇다면?

 

궁금했어.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옥상에, 벽 한 켠에 기대어 앉아 노트를 끼적이고 있는 그를 가만히 부르던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아무런 소리도 없던 옥상에는 유령처럼 나타난 소녀가 있었다. 회장. 그 때는 부회장이었나. 파악하고 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귀족 아가씨 이미지의 여자 부회장이라 했던가. 실제로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는 들었던 말과 그대로인 그녀의 이미지에 내심 놀랐었다. 그것이 첫 인상, 첫 기억.

 

 

그리고 이제에 이르러서는 별 의미도 없는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잔상이 문득 스쳐지나간 건 아마도 오늘의 하늘 역시 그때와 같은 눈이 시릴 정도의 회색빛이었기 때문일까.

 

 

 

 

 

결승, 코앞이던가.

 

내일 모레다.

 

연습 안 하고 있어도 돼?

 

잠깐 쉬는 시간일 뿐이야.

 

이 중요한 시간에 무얼 하러 옥상까지 올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전 타임이다, 빌어먹을 회장.

 

 

 

언뜻 보인 그녀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말려올라가 살풋 웃는 듯이 보였던 것 같다. 젠장. 그는 쳇, 볼멘소리를 내며 다시 노트로 눈을 돌렸다. 그녀도 다시 입을 다물었고 얼마간 옥상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 익숙한 조용함에 그리도 눈치 빠른 그 역시 잠시간은 아무것도 몰랐었으나, 그러나 조금씩 그 무음에 지독한 위화감이 느껴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우쳤다. 그녀는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보고 있었고 그가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도 그를 보며 작은 웃음을 지었다.

 

 

 

내 임기 기간동안 우리 학교에서 전국대회 우승이 나온다면 대단한 영광이겠지만. 

 

나온다면, 이 아냐. 나올 거다. 

 

응. 그랬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난 마지막이니까.

 

흥, 나도 마지막이야. 

 

 

 

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모습을 보며 그는 다시 노트로 눈을 돌리고 입을 다물었다. 딱히 숨기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서도 아무래도 몇 번이고 뱉어도 씁쓸한 말이었기에 그녀에게도 아직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일 뿐이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서도. 그것이 딱히 무언가와의 이별을 뜻한다거나 미식축구를 영원히 끊는다는 표현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쉬어가는 것 뿐이라고, 한 학년 잠시 노력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서, 다시 미식축구를 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보기 위해. 속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는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아직 삼학년이 있잖아.

 

그땐 선수 안 뛰어. 올해가 마지막이고 이번 결승이 마지막 경기다, 빌어먹을 회장.

 

……. 히루마도 그렇구나.

 

그래. 난 간다. 대회 끝나고나 보지.

 

 

 

응, 열심히 해. 미안, 중요한 경긴데 응원은 하러 못 갈 것 같네. 나직히 손을 흔들던 그 모습이, 목소리가 유난히 힘없어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일 거라 생각하였다.

 

 그녀가 사이쿄 대학 대신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그리고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크리스마스 볼을 부실에 장식한 직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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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조각글. 히루마랑 데이몬 고교 여회장님 드림입니다.

 

회장이 히루마보다 한살 위에요.

 

봐 주시는 분들도, 전력드림 참가해주시는 분들도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