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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on

T.. 2015. 6. 28. 23:33

 

 

<드림 전력 60분> 당신의 수호천사

 

 

스물 세번째 주제, 솔직함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탈론으로 참가하였습니다.

 

 

 

 

 

 

 

 

1.

 

 

그 날은 화요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리그에 출근한 그녀의 눈에 이번주의 무료 소환권 목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유난히도 눈에 띄던 챔피언이 있었다. 근접 암살자 챔피언이라 하였을 때 절대로 뺄 수 없는 그 명성 드높은 챔피언이다.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암살자인데 탈론 님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차피 연습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소환권을 구입하겠다 맘 먹은 챔피언이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소환권을 구입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다시는 첫 소환을 공식 랭크 경기로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경기 내용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어찌어찌 경기는 이겼다마는 그녀는 경기 내내 제 팀원들과 그리고 자신이 컨트롤하는 챔피언에게 손발이 닳도록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2.

 

 

그림자의 주인인가. 

 

하, 난잡한 수식어 하고는, 탈론.

 

무슨 용무지. 이 밤에 남의 구역에 먼저 친히 발걸음을 했다는 건.

 

딱히 싸우고 싶다는 게 아니다. 오늘 있었던 리그, 내 소환사가 누구였는 줄 알아?

 

 …….

 

짐작이 갔다는 표정이로군. 그래, 리그 내에서도 유명한 네 아가씨였다. 날 소환한 것도 처음이었지. 정말 지독히도 못 하지 않았나? 움직이는 나조차도 답답하더군. 

 

……그녀에 관하여 너와 할 말은 없다. 그 따위 헛소리를 하러 온 거면 냉큼 꺼져.

 

둘 다 서로에 관해서는 이렇게도 버둥거리는 꼴이라니. 그 소환사도 그랬다, 네 녀석을 확인한 순간 당황하는 심정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더군. 그 때 미니언을 세 마리쯤 놓쳤지, 아마.

 

그래서,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뭐, 간단해. 그 소환사와 너는 어떤 관계지?

 

아무런 관계 없다. 소환사와 챔피언, 그 이상과 이하도 아니다.

 

단호하군. 알았다. 그 소환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네 녀석과는 상관 없다는 말이겠지?

 

…더 말해 입만 아프겠군. 썩 꺼져.

 

크큭, 너무 그러지 말라고. 보는 건 재미있지만 말야.

 

 

웃으며 그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또 하나의 그림자도 큭큭 웃으며 희뿌옇게 옅어졌다. 폭풍 같은 어둠이 가고 거짓말같은 달빛이 그를 비춘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든 그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비웃듯이 파고드는 잡념들이란. 제드는 그녀가 그를 보고 당황했다고 하였다. 모든 대화 중 가장 위화감이 든 말이 그것이었다. 그에게까지 전해졌다고? 그녀는 그가 아는 모든 소환사 중 정신 교류를 가장 잘 컨트롤하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때조차, 심지어 게임이 후반부에 접어들어 넥서스에 의한 정신 동화가 가장 강력해 질 때조차 그녀의 감정이 그 쪽으로 역류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연속적으로 킬을 따내었을 때조차도 기쁜 감정 한번 전해진 적이 없다. 실수로 그가 죽었을 때나, 리그가 거의 져 가는 시점에서도 그녀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조차 흘려보낸 적이 없다. 소환사의 마음에 동화되지 않으니 그로써는 시종일관 차분함을 지킬 수 있었고 그 차분함은 암살자의 기본 조건이다. 그녀가 그를 소환했을 때 그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그게 큰 작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겨우 자신을 본 것 정도로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챔피언에게 내비쳤다고. 그 밤, 잡념은 달빛을 타고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3.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마, 소환사.

앗. 계셨어요, 제드 님?

흐음, 알고 있었으면서.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닫으려던 창문을 다시 활짝 열어재꼈다. 그림자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온 또 하나의 그림자는 창문을 훌쩍 넘어 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미천한 소환사의 방에는 무슨 일이신가요.

글쎄, 딱히 없는데.

에, 시비는 나가서 쉔 님한테 걸어주시는 편이.

…네 녀석을 죽이고 나가도 충분하지.

노, 농담이에요.

 

 

떨떠름하게, 그녀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손님을 맞을 생각도 이유도 없는 늦은 밤이었던지라 방 꼴이 말이 아니기는 했다. 애초에 이 밤에 여자 혼자 사는 방에 찾아올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이상한 분.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침대를 가리켰다.    

 

 

앉으실래요?

필요 없다.

아, 네.

 

 

그의 등 뒤에서 희미한 벽등에 비친 그림자가 일렁이듯 피어올랐다. 또 하나의 그, 그림자. 오늘 경기에서 그녀가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이기도 했다. 그림자를 활용하여 싸우는 여러 가지 컨트롤은 끔찍하리만큼 어려웠다. 그가 몇 번이고 방법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것은 게임이 길어지는 데에 꽤나 큰 작용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녀가 상대였던 탈론을 꽤 잘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적어도 라인전 단계까지는 큰 실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 소환사가 될 거라면 그림자를 쓰는 방법정도는 알아둬.

아, 네에. 혼자서도 연습 많이 해 볼 테니 자주자주 얼굴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아.

쯧, 건성건성대는 꼴 하곤.

그래서 정확히 왜 오신 건데요.

 

 

그 질문에 그가 아닌 그림자가 먼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가는 흐물흐물 사라졌다. 갑옷에 가려진 사이로 그녀는 그가 웃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놀리듯 킬킬대는 웃음을.

 

 

소환사, 대체 그 놈이랑은 무슨 관계지?

누구요? 쉔 님은 제게 따스하고 온화하신 은사이시자 제 상단 라인에서의 구원자이신데요.

…진짜로 죽고 싶은 모양이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탈론.

아무 사이 아니에요.

 

 

그렇게나 단박에. 아까 전의 참혹한 경기 도중에도, 또 방금 전까지도 여유롭게 농담이나 치던 사람이었다. 그 사이에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은 사라져 있었다. 제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흐음.

 

 

 

 

4.

 

 

그는 평소같지 않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까칠했으며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나무랐다. 그와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절대, 아무 사이도. 단순히 소환사와 챔피언의 관계, 비지니스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솔직해져, 소환사. 네 욕망에 충실해 봐.

 

그 날, 제드가 그녀의 방을 떠나면서 속삭였던 것은 그녀를 꿰뚫어보기라도 했단 양 달콤한 말이였다. 제드 님,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에요.

 

 

 

 

 5.



"…탈론 님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처음으로 리그에 왔을 때에, 그 의식, 기억하시나요? 저희는 그걸 리그의 심판이라고 불러요. 그 때의 소환사가 저였어요."

 

"하?"

 

그는 드물게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원래 저보단 좀 더 고위급 소환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땐 남는 인력이 없었다나. 이것 또한 모르셨겠지만 저도 나름의 이름 있는 소환사라, 어쩌다 보니 대체위원으로써 그 때 당신의 리그의 심판을 진행하게 되었었습니다. 그 쪽 전담의 소환사님들 몇몇 분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목에 닿던 칼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리그의 심판이란 시련이다. 챔피언들의 가장 근간이 되는 기억을 파고들어 그들을 시험하고 파악하는 리그의 최후 관문이었다. 설명은 충분히 들었고 정석에 가깝게 치뤄진 심판은 무사히 완료되었다. 빈민굴의 뒷골목에서 굶주리며 구르고 살아온 어린 아이는 결국 제 손으로 피에 얼룩진 길을 걷는 것을 택했다.

 

그것이 처음이었다. 모든 챔피언에겐 각각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리그의 챔피언이라는 뒷면에 새겨진 얼룩진 과거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그 중에서도 그녀가 직접 하나하나 헤집은 기억은 무엇보다 컸다. 미안함과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인 그에 대한 생각은 이내 그의 소환권을 구입한다는 형태로 나타났고, 그 후로 꾸준히 그를 소환하게 되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너였나."

 "네."

 

그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당연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 불쾌함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떠셨나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필요한 의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좋았다곤 말 못하겠군."

 

그 때보단 유연한 대답.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때문이었나, 리그에서의 정신 교류는."

"네?"

"네 쪽에서 내게 오는 정보를 극도로 절제해온 것 말이다."

"그, 그건 습관…."

"하아, 네 녀석이 얼마나 멍청한지는 온 리그의 챔피언이 다 알던데."

"읏, 누구에요, 그거! 제드 님이에요? 윽, 그놈의 그림자 좀 못 쓴다고 진짜!…."

"……."

"아, 그러니까요…. 멍청한 게 아니라…."

 

 

"소환사."

"네?"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보였다. 과거, 현재, 그리고 목표까지도."

"……."

 "나를 대하는 네 태도가 다른 챔피언들과 달랐던 것이 네가 맡은 심판에 대한 속죄나 동정이었다면 앞으로 내 소환은 집어 치워라."

"자, 잠깐만요."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는 똑바로 해."

 

목소리는 지독하리만큼 차가웠으면서도 담담했다. 애초에 그는 흥분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탈론 님, 화… 나셨어요?"

 "별로, 다만 기분 나쁠 뿐이지."

"…죄송해요. 하지만 적어도 속죄 따위는 아니었어요. 일단 제가 심판을 맡았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고. 또. ……. 아니에요. 그냥 그래서였어요, 탈론 님도 괜찮아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딱히 이해가 가진 않는군. 여튼, 그래."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줄타기, 그와 그녀는 언제나 그랬다. 지금 이토록 리그 밖에서조차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지만, 그 내용은 늘 이렇듯 반갑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목 끝까지 차오른,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삼켰다. 보답받을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렇기에 절대로 말할 수도 들킬 수도 없다. 절대로, 당신을 좋아한다라고는.

 

 

 

 

 

-

 

 

정말 오래 전 썰인데 이렇게 결국 우려먹고야 마네요. 내용이 조금 난잡해서 이해가 잘 가실까 걱정됩니다(mm..

 

리그와 소환에 대해서는 자체설정입니다(..) 날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같이 보시면 좋을 링크 -> (http://cactusagency.tistory.com/230) (탈론, 리그의 심판) 

 

롤. 관련 범위까지 인생본진중 하나입니다;ㅅ;..

 

불친절한 장르의 불친절한 글로 찾아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전력 참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