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하라 이자야
<드림 전력 60분> 너의 빨강구두
쉰 네번째 주제, 꽃샘추위
※ 듀라라라!! 의 오리하라 이자야로 참가하였습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한겨울 날씨보다 더 표독스러운 것이 갓 봄을 앞둔 이맘때의 날씨라고 했다. 매섭게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바람에 잠시 인간의 사회적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에 대하여 고심했지만 오 초간 더 바람을 맞고 나서 나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패딩 후드를 눈이 가려질 정도로 덮어쓰고 지퍼를 제일 끝까지 올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동동 달리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에 대해서는, 나 자신은 3인칭으로 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일 뿐이었다. 설사 아는 사람을 마주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옷을 푹 뒤집어쓴 상태에서는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추위는 못 견디는 사람이라 죄송합니다. 설마 달리는 눈사람 도시전설 같은게 만들어지진 않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 집까지 오 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는 찰나에ㅡ
"옷 예쁘네?"
어깨에 척 걸쳐지는 묵직한 감촉이 하나. 그것을 사람의 팔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에 일 초.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 잠시 자리에 얼어붙고 천천히 고갤 돌려 그 팔의 주인을 확인하는 데에 이 초. 익숙한 목소리와 그 익숙한 웃음을 확인한 뒤에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리는 데에는 0.5초.
"에, 인사가 주먹이야? 여튼 폭력적이라니까."
"너, 너, 네가 여기 왜 있어!"
물론 그 녀석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가볍게 피하며 여전한 그 웃음을, 아니 평소보다 훨씬 더 즐겁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 속을 긁을 뿐이었다. 만나도 하필 이 놈을 여기서 만나냐. 왜 하필.
"이야, 이렇게 보니 얼굴이 찐빵 같은 걸. 차림새를 보아하니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는 길인가봐? 오랜만에 얼굴 보니 너무너무 반가워서 말이야. 인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대체 어떻게 알아 본 건데! 순전히, 아 씨, 하."
아아악.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일단은 후드를 벗었다. 모자에 눌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충 매만지고 지퍼… 에까지 손을 대기엔 귀에 달라붙는 바람이 차다. 내릴까, 고심하며 올려다 본 저 놈이란 그러니까 누구라도 짐작이 갈 만한 그런 사람이다. 오리하라 이자야. 오늘도 까만 털코트는 여전하시군. 춥지도 않나, 뭐 코 끝은 조금 붉은 듯도 하고. 머리카락…. 아, 남자는 머리 짧아서 좋겠다. 안 휘날리고. 그래서 이게 아니라.
"여자의 신비감이라곤 제로인 모습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나를 포함한 행인들에게 너무하지 않아?"
"아, 아무도 못 알아본다고."
"차라리 못 봤으면 좋았을 걸."
"으으, 작작 해…."
"넌 사람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니까 말야. 사실 사람들은 아무래도 관심이 없을 텐데, 남의 옷 따위."
"그걸 아는 놈이 지금, 길 한 복판에서…!"
"그걸 아니까 말을 걸지 않았을까?"
아. 내가 왜 이 놈이랑 말을 섞고 있는 거지. 이자야는 여전히 희미한 웃음을 입 꼬리 한 쪽에 흘리고 있다.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쉬었다. 아까보다 두 배는 더 추워진 것만 같다. 아마 내 앞에 이 놈이 이 주위 온도를 삼 도쯤은 더 내리고 있는 것도 같고. 그런 느낌일 뿐이지만.
"그만 하자. 더 추워진 것 같아. 으."
"아, 이거. 꽃샘추위라더라. 요 며칠 많이 춥다고."
"네 코트는 평소랑 똑같은 것 같지만."
"이거? 나름 보온도 되는데. 따뜻한 겨울용라구."
"사계절의 구분이 있던 거였어?!"
물론, 대답하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뒷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기분이 들었다. 참 이상한 놈이라니까. 두 번째로 한숨을 쉬고 나서 할 말이 없어 잠시 저 기분나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코 끝이 간지러워오고. 에취. 으읍.
"으, 추워. 그럼 난 간다. 너도 볼 일 있으면 빨리 들어가라."
"으음, 오늘은 담백하네. 뭐, 나도 가야 되니까. 슬슬 그만 할래."
이러쿵저러쿵 해도 이자야랑 나는 딱히 많이 볼 일이 있는 것도, 입에 담기도 싫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거리에서 저 정보상과 엮여서 좋은 꼴 본 사람은 몇 안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는 다행히 그 몇 안에 들었던 것 같다. 그저 딱 인사 나눌 정도의 관계는 이렇게 편하게 끊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것이다. 그렇다. 끝은 따뜻한 것이 좋은 거야. 별로 이 거리에 적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 편하게 편하게 녹아들어 사는 게 제일이라니까. 바이바이 인사도 한 뒤에, 돌아서려고 발을 떼었는데,
그런 꽃샘추위가 가신 봄 날씨처럼 훈훈한 끝이 기다리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만.
갑자기 강풍이 분 줄만 알았다. 그 바람은 오른쪽 옆을 거세게 스쳐지나가서 저 멀리에 우당탕탕, 하고 떨어졌다. 동시에 나와 그는 아까와 같이, 굳은 기계처럼 서서히 고개를 돌려 저 뒤에 떨어진 자판기를 확인하였다. 딱히 보지 않아도 안다.
"이자야아ㅡ?"
"…하하, 제길."
낮게 욕을 읊조리는 그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미안, 난 말려들기 싫어. 아, 하하. 이자야. 먼저 갈게! 그 뒤로는 돌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나보다는 그가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도 저 멀리서 쾅쾅 큰 소리가 들려왔던 걸 생각해보면 아직 이케부쿠로 꽃샘추위는 풀리지 않을 성싶다. 아니, 그 추위 영원히 풀리기는 할는지.
-
지금까지 한 전력들이랑 또 다른 드림주. 1인칭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이자야 죽이고 싶다! 오늘 흑백논리 다녀왔는데 왕님이 너무 좋아요!(ㄴㄷ
전력 드림 참가해주시는 분들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처럼 지각이어서 죄송합니다..